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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가 죽었다 리뷰 (일상의 균열, 집착의 덫, 인간의 어둠)

by andrew1113 2025. 9. 18.

그녀가 죽었다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 (주)콘텐츠지오, (주)아티스트스튜디오, (주)무빙픽쳐스컴퍼니

2024년 5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은밀한 욕망과 불안한 내면을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관음증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타인의 삶을 몰래 본다’라는 금기적 행위가 어떤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단순한 범죄의 미스터리를 넘어서 인간의 외로움, 관계의 단절, 집착의 위험을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심리적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미스터리적 재미와 함께 사회적 문제의식을 결합한 이 영화는 2024년 한국 스릴러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 일상의 균열 : 평범함 속에 숨어든 불편한 시선

영화는 평범한 공인중개사 ‘구정태’라는 인물의 삶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소시민적인 일상을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묘한 공허와 집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태는 고객이 남기고 간 열쇠를 이용해 그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생활을 관찰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 행동은 단순한 범죄 행위라기보다, 일종의 호기심 충족과 대리 체험에 불과합니다. 남의 일상을 훔쳐보면서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삶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음’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내면에는 드러내기 힘든 욕망과 호기심을 품고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은 현대 사회에서 온라인을 통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SNS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비교하며, 부러워하는 심리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정태의 이러한 행위를 단순한 일탈로 치부하지 않고, 그것이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합니다.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금기의 경계를 넘고, 그 경계가 무너졌을 때 어떤 위험이 따라오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은 관객에게 묵직한 긴장감을 안겨줍니다.

정태의 관음 행위는 결국 한 여성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확장됩니다. 단순한 호기심이 불러온 균열은 이제 현실의 파국으로 이어지고, 영화는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일상의 균열’이라는 이 첫 번째 소제목은, 결국 우리 모두가 품고 있을지 모르는 불편한 시선을 은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 집착의 덫 : 관음에서 추적으로 이어지는 파국

정태가 한 여성의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 그의 일상은 완전히 뒤흔들립니다. 그는 목격자로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그는 사건을 은폐하거나, 오히려 진실을 스스로 파헤치려는 기묘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관음의 문제를 넘어 ‘집착’이라는 심리적 덫으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정태는 자신이 바라보던 여성의 죽음에 강하게 휘말립니다. 단순히 목격자였던 그는 점차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며, 피해자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이자, 동시에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그가 사건에 더 깊이 파고들수록, 관객은 그의 심리 속에서 점점 커지는 집착과 불안정을 목격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뛰어난 연출을 보여줍니다. 어둡고 차가운 톤의 색감, 긴장감 있는 음악, 그리고 좁은 공간을 활용한 촬영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정태의 불안한 내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인물의 심리적 압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면들은 영화적 몰입도를 극대화시키며, 단순히 이야기의 전개를 넘어선 심리적 체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지점은 정태를 단순한 범죄자나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죄책감과 불안에 휩싸인 동시에,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욕망에 흔들립니다. 관객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처한 심리적 덫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시선은 영화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넘어서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집착은 결국 그를 파멸로 몰고 갑니다. 자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었을 사건 속으로 더 깊숙이 발을 들이면서, 그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립니다. 관객은 그의 파국을 지켜보며, 집착이 어떻게 개인을 붕괴시키고 사회적 연결을 단절시키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집착의 덫’이라는 이 소제목은 곧 인간이 금기를 넘었을 때 빠져드는 심리적 늪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3. 인간의 어둠 : 거울처럼 비치는 우리 자신

<그녀가 죽었다>의 결론은 단순한 사건 해결이나 범인의 정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어둠’입니다. 정태라는 인물은 우리와 동떨어진 괴물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불안을 형상화한 존재입니다.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은 충동, 자신이 가진 공허를 타인의 이야기로 채우려는 욕망,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집착은 현대 사회 속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심리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영화는 관음증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비춥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일상을 손쉽게 들여다보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공허는 더 커집니다. 정태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회적 풍경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상징입니다.

둘째, 영화는 인간이 욕망을 통제하지 못할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정태가 집착의 덫에 빠져드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선과 악, 욕망과 자제’ 사이에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인지를 증명합니다. 그의 파멸은 곧 우리에게 경고로 다가옵니다.

셋째, 영화는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관객은 정태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도 저 상황에서 호기심을 참을 수 있었을까?’, ‘타인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고 싶었던 적은 없을까?’라는 질문이 관객의 마음에 파문처럼 번집니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의 틀을 넘어 심리적 거울이 되어,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춥니다.

<그녀가 죽었다>는 단순히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관객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여전히 불편한 잔상을 안고 가게 되며,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힘입니다. 웃음도, 눈물도 아닌 묵직한 불안과 성찰을 남기는 작품, 바로 <그녀가 죽었다>가 가진 독보적인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